 술마시는 아들에게- 정약용이 보낸 편지
술 마시는 법도
[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]
네 형이 왔을 때 시험삼아 술 한잔을 마시게 했더니 취하지 않더구나.
그래서 동생인 너의 주량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
너는 네 형보다 배(倍)도 넘는다 하더구나.
어찌 글공부에는이 아비의 버릇을 이을 줄 모르고 주량만 아비를
훨씬 넘어서는 거냐? 이거야말로 좋지 못한 소식이구나.
네 외할아버지 절도사공(節度使公)은 술 일곱잔을 거뜬히 마셔도 취하지
않으셨지만 평생동안 술을 입에 가까이하지 않으셨다.
벼슬을 그만두신 후 늘그막에 세월을 보내실 때에야 비로소
수십방울 정도 들어갈 조그만 술잔을 하나 만들어놓고 입술만 적시곤 하셨다.
나는 아직까지 술을 많이 마신 적이 없고 내 주량을 알지도 못한다.
벼슬하기 전에 중희당(重熙堂)에서 세번 일등을 했던 덕택으로 소주를
옥필통(玉筆筒)에 가득 따라서 하사하시기에 사양하지 못하고 다 마시면서
혼잦말로 "나는 오늘 죽었구나" 라고 했는데 그렇게 심하게 취하지 않았다.
또 춘당대(春塘臺)에서 임금을 모시고 공부하던 중 맞난 술을 큰 사발로
하나씩 하사받았는데, 그때 여러 학사(學士)들이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정신을
잃고 혹 남쪽을 향해 절을 하고 더러는 자리에 누워 뒹굴고 하였지만,
나는 내가 읽을 책을 다 읽어 내 차례를 마칠 때까지 조금도 착오없게 하였다.
다만 퇴근 하였을 때 조금 취기가 있었을 뿐이다.
그랬지만 너희들은 지난날 내가 술을 마실 때 반잔 이상 마시는
걸 본 적이 있느냐?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.
소 물을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에는 적시지도 않고
곧장 목구멍에다 탁 털어넣는데 그들이 무슨 맛을 알겟느냐?
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,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
구토를 해대며 잠에 곯아 떨어져버린다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?
요컨대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(暴死)하기 쉽다.
주독(酒毒)이 오장육부에 배어들어가 하루아침에 썩어 물크러지면
온몸이 무너지고 만다.이것이야말로 크게 두려워할 일이다.
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시키거나 흉패한 행동은 모두 술 때문이었기에
옛날에는 뿔이 달린 술잔을 만들어 조금씩 마시게 하였고,
더러 그러한 술잔을 쓰면서도 절주(節酒)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자께서는
"뿔 달린 술잔이 뿔 달린 술잔 구실을 못하면 뿔 달린 술잔이라 하겠는가!"
라고 탄식하셨다.
너처럼 배우지 못하고 식견이 없는 폐족 집안의 사람이
못된 술주정뱅이라는 이름까지 가진다면 앞으로 어떤 등급의 사람이 되겠느냐?
조심하여 절대로 입에 가까이하지 말거라.
제발 이 천애(天涯)의 애처로운 아비이 말을 따르도록 해라.
술로 인한 병은 등에서도 나고 뇌에서도 나며 치루(痔漏)가 되기도 하고 황달이
되어 별별 기괴한 병이 발생하니, 한번 병이 나면 백가지약도 효험이 없다.
너에게 바라노니 입에서 딱 끊고 마시지 말도록 해라.애비의 말를 명심하거라.
다산초당에서 애비가 보낸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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